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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체가 더 힘들어서 그만 두었어요. 썰체로 마무리 할라 그랬는데... 찬열이까지 등장해서... 길어질 것 같아요. 원래 계획은 이렇게 긴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러다 알파벳 두바퀴 돌겠어요.



background music : Norah Jones -September in the Rain



 늦장마에 비가 주룩주룩 왔다. 수호는 여느때처럼 까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곧 개강인데.. 피곤하겠네 더. 그래도 졸업할 때까지 얼마 안남았으니까.. ' 그렇게 수호는 응차응차 하고 집에까지 왔는데 문 앞에 누군가 기대 서 있었다. 길다란 인영이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수호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임을 확인하고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저렇게 웃지. 프리즘의 모든 빛을 흡수한 사람처럼, 밝고 아름답게. 


"진짜 번호키좀 알려줘라."

"내 집이야...."

"우리 집이지.."

"돈 보탠거 있어요?"

"월세낼까?"


수호는 찬열의 눈을 한번 바라보고 못 당한다는 식으로 고개를 도리질하며 집안으로 들어왔어다. 따라 들어온 찬열은 쇼파에 기대며 조이는 넥타이를 아래로 잡아댕긴 채 "나 배고파.. 라면 하나만 끓여줘" 하고 말했다. 수호는 이 시간까지 왜 밥도 안먹고 온건지 집에 가면 와이프가 좋은 밥 차려줄텐데 생각하며 밥을 준비했다. 이 늦은 시간에 속 버리게 라면이 다 뭐람. 


찬열은 수호가 밥을 차리는 걸 알아차리고 수호 뒤로 가서 수호의 허리를 안았다.



"왜 귀찮게 또 밥 차리고 그래. 그냥 라면 끓여달리니까. 라면 먹고싶어서 그런건데."

"무슨 의사가 식습관이 그렇게 엉망이야? 그리고 밥은 좀 제때 제때 먹어요. 나 몇시에 오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니가 나 밥 먹는거 봐주는게 좋단 말이야. 일때문에 같이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찬열은 정말 듣기좋은 말만 골라하는 남자였다. 처음에 자신에게 숫기없게 굴었던 찬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개구지고 밝은 모습을 보여줬다. 말도 엄청 많았다. 진짜 이런 사람인지 몰랐는데. 진짜 가끔은 자기보다 7살이나 많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몸만 다 큰 소년. 아니면 우직하고 말 잘 듣는 큰 개같은 느낌? 개같다고 하니까 좀 이상한데 하여간 큰 눈으로 자기를 올려다 보며 자기의 모든 것에 팔딱팔딱 반응하는 생명력 넘치는 그를 보면 절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부인은 그가 이런 남자라는 걸 알까? 식사를 다 차린 수호는 찬열의 맞은 편에 앉아 그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찬열은 역시나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수호한테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오늘 어떤 꼬맹이가 손가락이 끊어져서 병원에 왔어. 장롱 경첩에 넣었다가 동생이 문을 닫는 바람에 끊어졌대."

"그래서? 다시 붙여줬어요?"

"응. 근데 깔끔하게 절단된게 아니라 붙을 지 잘 모르겠어. 거머리 붙여놓긴 했는데.."

"거머리 피 먹고 배불러서 툭 하고 떨어지는 거 징그러워."

"너도 앞으로 많이 봐야 돼."

"응.. 그래도 다른 과보다 나아. 죽고사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더 힘든 거 같기도 해. 어느날 갑자기 장애를 안고 평생 살아가야하는 누군가의 절망을 본다는 것은. 그것도 반복적으로"

"맞아요. 그것도 힘든 일일거야. 얼른 밥 먹어요. 그 애기 손가락 잘 붙을거야."

"응"



찬열은 큰 눈의 소유자답게 정이 많아 환자들의 아픔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마음까지 돌보고자 하는 좋은 의사였다. 수호는자신이 찬열처럼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많았다. 그냥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의대를 선택한 건데 찬열은 어릴 적 부터 꿈이 의사였다고 한다. 만약 의대 안 붙었으면 자신은 뭐하고 살려고 했을까. 적성같은거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었던 수호는 찬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 의대 안왔으면 뭐 했을거 같아요?"

"수호야. 너 의대온 거 잘한 거 같아."

"누가 그거 얘기해달래요?"

"너, 니가 어떤 계기로 의대를 선택했건 너는 좋은 의사가 될거야. 나는 알아."


 찬열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미 알았다. 철없는 애처럼 보여도 저런 모습을 보면 역시 어른이었다.  찬열의 말은 수호를 감동시켰다. 누군가 자신에게 저런 얘기를 해주길 바랬었다. 찬열은 어쩜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자기보다도 잘 아는 걸까. 사랑할 수 밖에는 없는 남자. 그래도 내 것이 될 수는 없는 남자. 내가 그의 아이를 갖는 다면 어떨까. 그럼 혹시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한다고 하지는 않을까? 그치만 찬열네 집안은 찬열의 처가덕택에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어떻게 자신이 그걸 망칠 수 있을까. 수호는 자신과 찬열을 닮은 아이를 생각해보았다. 하얀 피부에 큰 눈, 개구진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 너무 사랑스러워 유치원에 보내기도 아까울 것 같아. 수호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를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왜 웃어?"

"아니에요."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찬열은 아이 낳을 계획 없나?


"찬열씨는 애기 안낳아요?"


밥을 다 먹고 물을 마시던 찬열이 사레가 걸려 콜록댔다. 


"뭐?"

"아니.. 결혼한 지 1년 됐잖아. 애 소식 없나하고."

"니가 왜 그런거 신경써. 

"그냥 찬열씨 닮은 애기 보고 싶어서."


수호는 찬열의 화가 난 눈에 점점 말소리가 작아졌다.


"낳아야지. 근데 너한테 그런 얘기는 안 들었으면 좋겠다."

"......"

"너는 아무렇지 않아? 다른 여자가 내 애를 낳는데?"

"그냥 찬열씨 닮은 애기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물어봤어요. 미안해요."

"아니야. 내가 너한테 미안하단 소릴 어떻게 들어."




찬열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수호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그를 잊지 못해 계속 찾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화가났다. 찬열도 알았다. 수호를 위해서는 자기가 수호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자기도 결혼할 당시 수호와 헤어지려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수호없는 삶은 자신의 예상보다도 훨씬 힘든 것이었다. 결국 수호를 다시 찾아가 빌고.. 그를 자신의 정부로 만들었을 때 찬열은 다시 수호를 안을 수 있음에 감사했지만 한 편으로는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말로는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했지만. 자신은 수호와 결혼을 할 수도 아이를 가질 수도 미래를 약속할 수도 없는 몸이었다. 자신도 결혼 전에 상상해본 적이 있다. 수호와 결혼해서 수호가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와 수호에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며 사는 삶. 그러나 자신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았던 자신의 삶의 방식을 버릴 수 없었고 그 모든 미래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밀어내지 못하는 수호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서 그를 가지고 그의 미래를 자신에게 가두면서 찬열 역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수호가 자신을 닮은 아이를 생각했다니... 찬열은 자신의 처지가 다시금 한탄스러웠다. 미안해. 미안하다. 수호야. 그렇지만 자신의 아이를 가지는 상상을 한 수호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이기적인 자신이 역겨웠다. 


나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니. 응? 내 씨를 니 안에 심고 싶어? 나도 너 임신시키고 싶은데.. 너랑 나 닮은 아이 보고 싶은데 참는거야 간신히. 


찬열은 대화 후 어색한 분위기 속 말없이 앉아있는 수호를 끌고 익숙한 그의 방 침대로 갔다. 그리고 그 곳에 수호를 앉히고 수호를 끌어앉았다.


"수호야, 내가 사랑하는 건 너뿐이야. 알지?"

",,,응"

"정말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어. 나 볼거지 계속?"

",,,응"

"미안해. 미안해. 근데 나 너없으면 안돼... 너도 그렇지? 너도 나 없으면 안되지... 응? 그 여자는 껍데기랑 사는거야. 나는, 내 마음은 다 너한테 있어..너도 나 사랑하지?"


찬열은 품에서 수호를 놓아주고 그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었다. 오늘도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계속될 것이다. 이 사랑은. 이 곳이 자신이 쉴 곳이었다. 비일상적인 사건 사고 속에서 놀라 절규하고 우는 사람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자신이 유일하게 쉴 수 있고 철없는 소년처럼 굴 수 있는 단 하나의 집. 자신의 오아시스. 자신의 안녕. 자신의 아프락시스. 


"빨리 말해. 날 사랑한다고."

"사랑해요."

"한번 더."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거야. 너도 맘 변하면 안 돼. 알았지?"



수호는 자신을 찾아올 때마다 집요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요구하는 찬열 앞에서 맘 편히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그의 요구를 못이기는 척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자신의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 할 그런 사랑. 자신이 하는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지긋지긋했지만 버릴 수 없는 사랑이었다. 서로가 불안을 느끼며 서로를 갈급히 원하는 이런 사랑. 지독한 사랑의 굴레. 누군가가 이 곳에서 자신을 꺼내 줄 수 있을까? 찬열을 향해 쏟아지는 자신의 사랑한다는 말을 멈춰줄 수 있을까? 스스로는 찬열을 거부할 방법을 몰랐다. 자신의 자존심이나 미래나 행복 같은 것은 바로 눈 앞의 찬열에게서 무용지물이 되 촛농처럼 녹아 흘러내릴 뿐이었다. 

찬열은 밤새 수호를 온 마음으로 안았다.


"힘들어?"

"좀..."

"알바 안하면 안돼?  내가 진짜 다 해주고 싶어 집도 더 좋은데로..."

"싫다고 했잖아요."

"너 자꾸 마르는거 같단 말이야."


정사 후 밀려오는 잠을 청하며 뒤에서 자신을 꼭 껴안은 찬열을 느꼈다. 그나저나 요즘 너무 자주 찾아와서 불안했다. 언제 깨어질 지 모르는 이 달콤함이. 







종인은 퇴원했고 종인과 준면은 까페에서 만났다. 준면이는 종인이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18살의 종인이는 묘하게 20살의 종인이와 달랐다. 20살 종인이는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느낌이었지만 18살 종인이는 어딘가 놀려주고 싶은 귀여운 소년이었다. 그치만 종인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김준면을 알고 김준면을 사랑하던 종인이가 그리웠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종인아. 전공 4개는 내가 시간표 다 짰는데 이거 보구 교양 2개만 고르면 돼."

"음... 영화의 이해?"

"아, 그거 지난 학기에 너 들었어."

"그럼.. 동아시아 역사의 이해"

"것도.. 지난 학기에 들은건데... 와 진짜 신기하다. 너 진짜 종인인가봐."

"ㅋㅋ 당연히 내가 종인이지."

"어쩜 기억을 잃었어도 취향이 한결같아. 나 소름돋아."

"그래? 내 취향이 한결같아?"


종인은 준면의 말을 듣고 준면의 얼굴을 다시 주의깊게 보았다. 열대과일 샤베트에 빨대를 꽂아 쪽족 빨아먹는 입술에 눈이 갔다. 어쩜 저렇게 빨갛지? 뭐 바른거 같아. 피부도 진짜 백인보다 하얀 것 같다. 잡티 하나 없고. 눈은 동그래가지고 초롱초롱. 빨대에서 입을 뗀 준면은 샤베트가 맛있는지 자신의 얼굴을 보곤 방실방실 웃는다. 사르르...아 이뻐라...역시 자기 취향이었다. 아무래도 자기는 준면을 사랑했었음이 분명하다. 주변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지 않았을까? 알아봐야겠다. 근데 핸드폰 비밀번호를 몰라서.. 그거 해결해야는데 누구한테 물어보지. 그나저나 준면이에게서 미약한 오메가 페로몬이 느껴지는데 준면인 오메간가 아님 가족 중 누군가 오메가라서 냄새나는 건가.


"준면아 너 오메가야?"

"뭐??"

"뭘 그렇게 놀래. 너 젠더가 뭐야?"


준면이는 피검사를 한 병원에서 우성오메가진단을 받았다 . "아마 홀몬 영향으로 피부도 더 매끈해지고 수염도 안날 거에요. 페로몬은 평상시에는 미약하고 히트싸이클 때는 최대 반경 4-5m까지 감지 될 수 있으니 숨기고 싶으면 주의하세요. 준면씨는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우성오메가는 젠더의 꽃이니까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멋진 알파 만나요." 하고 의사가 자기에게 꽃 한송이도 같이 건네주었다. 센스있는 의사양반이었어. 그치만 종인이한테는 아직 좀..


"나 베타야."


종인이는 살짝 아쉬웠지만 베타면 어때 사랑하면 장땡이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준면이의 생각이 문제였다. 젠더를 넘어서는 사랑을 반대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 종인이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준면이에게 물어보았다. 




"준면아, 너는 다른 젠더와 연애하는거 어떻게 생각해?"

"나는 예전에는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고모도 젠더 극복하고 연애하시고, 나도 생각이 바뀌었어. 상관없다고 생각해. 진정한 사랑만 있다면."

"그치. 너 그렇게 생각하지."

"종인이도 그래?"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준면이는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하는 종인이 너무 신기했다. 18살 종인이도 그렇게 생각했었구나. 근데 18살 종인이는 연애 안했나?



"종인아. 근데 너 18살이잖아....."

"뭐 내 기억으론, 근데 아닌거 알아. 나 스무살이잖아."

"응 그렇긴 한데.. 너 18살 때 사귀는 애 없었어?"

"어. 나 완전 공부만 열심히 했어."



준면이는 웃음이 났다. 하긴 스엠대는 아무나 와.. ㅋㅋ 종인이 열공했구나. 하하하. 



"너 왜그래. 뭐가 웃겨?"

"아니아니... 여기 샤베트 되게 맛있다~"

"어 맛있다. 근데 너는 지금 애인 있어?"




준면이는 잠시 세훈이가 떠올랐다. 잘지내겠지? 이별은 그 자체로 힘든 것이어서 세훈이를 그렇게 보내고 준면이는 자기 전마다 울었다. 종인이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별은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일상은 이어나가겠지만 아마 한동안은 맘 속 어딘가 슬픔이 얹혀 있을 것 같다. 


"있었는데, 얼마 전에 헤어졌어. "

"언제?"

"아직 얼마 안됐어. 3일정도"



헤어졌다는 말에 좋아하다 종인이는 눈을 크게 떴다. 

3일밖에 안됐다고? 그럼 다시 만날 수도 있는거 아니야? 어떻게 하지? 확 고백 해버려? 근데 애인이 있었다니 아마 자기는 준면의 애인때문에 고백을 못했나보다.. 아님 했는데 까였었나....아 진짜 했다가 까였나? 준면이한테 물어볼까? 근데 그 사람 많이 사랑했을까?....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 진짜 이 놈의 기억은 왤케 안 돌아와. 미친.



"마음 안 좋겠다."

"응 좀, 근데 좋아지겠지."

"다시 만나거나 할 확률은?"

"없어."

"확실해?"

"응.."

"너 애인은 어떤 사람이었어? "

"공대생인데..  나한테 되게 잘하고 애교도 많고. 우성알판데 좋은 사람이었어."



종인은 그와 사귄 사람이 우성알파였다는 사실에 일단 기뻤다. 정말 젠더 상관 없구나. 그렇다면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많이 좋아했었나 근데 내가 애교는 좀.... 애교 많은 거 좋아하나?



"종인아, 근데 너 핸드폰 왜 안받고 집전화로만 해?"

"아.. 나 잠금 생각안나서 초기화해야되는데 귀찮아가지고. 해야지. 혹시 내 잠금번호 알아?"



준면은 고민했다. 종인이에게 그 번호를 알려줘야하나. 생일인것만 얘기 안하면 되지 뭐. 



"내가 알아. 0522야."

"그래? 진작에 너한테 물어볼 걸 그랬다. 근데 그게 무슨 날이야? 18살 김종인은 모르는 숫자인데?"

"글쎄. 나도 그냥 니가 알려준거라 잘 몰라."




종인은 이 번호가 뭘까 싶다가... 온통 낯선 이름 투성이인 전화번호부를 살폈다. 

오발암? 오세암은 아는데.. 오발암은 뭐지? 이름일리는 없고 발암되게 싫은 사람인가보다. 나 누구 막 싫어하고 별로 안그러는데 진짜 별로였던 모양이다. 메시지가 여러개 와 있다. 온통 모르는 이름인데 유마누나? 알바 왜 안오냐는 메시지다. 아.. 아버지가 말해두시긴 했는데 거기도 한 번 가봐야 겠다. 친한 사인가. 근데 옆에 임시메시지창에 메시지가 하나 있길래 종인은 이건 또 뭐지 하며 임시메시지를 열어보았다. 장문의 문자였다. 


준면아... 자니. 나 종인이야. 설마 내 번호 지웠어? 뭐 그랬대도 나는 할말은 없어. 내가 너한테 너무 끔찍한 짓을 저질렀지. 준면아 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 내가 너무 싫다. 근데 그 때 내가 한 말 다 믿는거는 아니지? 제발 그러면 안돼. 그 날 나의 모든 것은 거짓이었어. 내가 알파라는 이유로.. 근데 그건 내가 바꿀 수가 없잖아. 근데 니가 그래서 내가 안된다고 하니까 그럼 난 너에게 닿을 방법이 없으니까...너무 화가 나서. 물론 화난다고 그러면은 진짜 나쁜놈인데, 그래서 내가 나쁜 놈인데... 준면아 나 진짜 너한테 사과할 자격도 없는데 그냥 내가 한 말이 다 거짓말이라는 걸 꼭 너한테 말하고싶어. 진짜 염치없지만 준면아..준면아..진짜 준면아... 사랑해 너는 내 첫사랑이야. 베타고 오메가고 나는 진짜 다 상관이 없어. 나는 진짜 평생 너만 사랑할 자신이 있는데.. 나 진짜 안되는거지. 나 진짜 너뿐인데 그래도 안되는 거지. 정말 너뿐인데. 너한테 상처주는 진심도 아닌 그런 말 해서 너무 미안해. 나는 진짜 니가 너무너무 소중해 준면아 제발...내가 했던 말들이 너를 더이상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짜도 아닌 말들이니까. 미안해. 정말.  그리고 지금도 사랑해... 너한테 자격도 없는 놈이지만 말이야 준면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종인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분명히 자신이 썼을 것이 분명한 장문의 문자를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눈 앞의 준면이를 다시 보았다. 준면이는 "왜애?" 하며 자신을 보고 웃었다. 


역시 나는 준면이를 사랑하는 거였어. 근데... 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준면이에게 이렇게 사과를 하려고 했던 걸까. 자신이 저지른 그 끔찍한 짓이 대체 뭐지... 준면이에게 무슨 상처를 준거야.

준면아 내가 너한테 죄 지은거 있어? 준면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말해보지만 준면은 웃을 뿐이었다.


종인이는 갑작스레 자신이 모르는 자신과 마주한 후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세훈이는 준면과 이별한 후 이별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다. 엄마랑 밥을 먹다가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났다. 

이거 지금 내 아이즈에서 흐른 티얼스?  


"하. 하하하하. "

"밥먹다 왜 웃고 그래? 어머! 너 근데 울었니?"

"아니 엄마 밥이 너무 싱거워서  눈물로 간을 해봤어."

"그게 무슨 정신나간 소리야. 무슨 일 있어?"

"아냐 그냥.... 엄마. 있잖아? 사랑은? 아픈거다?"

"너 뭐 이별했니?"

"어.... 나 그 흔한 사랑하고오!  그 흔한 이별을 했어 내가 "

"하!  밥 안 먹을거면 그냥 들어가라. 지난 번엔 지 형이 그러더니 형제가 아주그냥들 사랑에 죽고 살아. 지 아빠 연애할 때랑 똑 같애. 애인한테 목을 매고. 이놈의 오가들."

"아빠 그래서 좋아한거 아니야?"

"아들이 그러면 꼴보기 싫은거야."

"엄마 나중에 며느리 들이면 마귀할멈 쩔겠다... "

"니가 어떻게 하냐에 달려있지. 벌써부터 있지도 않은 지 부인 편드는 거 봐. 먹을거면 먹고."

"안 먹어!"




세훈이는 엄마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시위하듯 안 먹어를 외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들어와서 자기 방에 있는 대형 미피인형을 끌어안고 훌쩍였다. 


"준면아... 흐윽...꺼이꺼이 끅 끅ㅠㅠ
그 새끼가 끝내 기억 못 찾으면 나한테 다시 와.... "

"진짜... 내 사랑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사그라든.. 마치 애절한.... 그래. 내 사랑은 봉오리채로 떨어진 꽃과 같아... 땅바닥에서 만개한 다른 꽃들을 보며 슬픔에 잠기겠지..."


세훈이는 마치 시인이 된 양  자신의 처지를 읊어댔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세상의 온 갖 아름다움을 시로 쓰고 싶다면 사랑을 잃은 남자는 모든 안타깝고 슬픈 것들에 대해 시를 쓰고 싶은거구나. 세훈이는 다시는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렸다.


"사진... 핸드폰 어디갔어."


세훈은 핸드폰을 켜 찍어둔 준면의 사진들을 보았다.


"이건 우리 준면이 까페에서 허니브래드 먹을 때. 이건... 그거 하고 준면이 잠들었을 때. 참 순발력이 있었지. 이런 걸 찍을 생각을 하고..."


세훈이는 침대에 한쪽으로 누워 자신이 찍어둔 준면의 사진들을 보았다. 짧지만 모든 순간이 추억이었다. 또 어느샌가 눈물이 흘러 자신의 왼쪽 눈에서 나온 눈물이 오른쪽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세훈이는 사진을 지워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뭐 미워서 헤어진 것도 아닌데. 보고싶을때마다 보는거지 뭐. 베개는 다 젖었고 한 참을 누워서 사진을 보던 세훈이는 일어나 미피인형을 바로 앉히고 말을 걸었다.


"야, 김준면. 너... 진짜 나 놓친거 후회한다? 엉?"

"내가 존나.... 대한민국 최고 변호사되가지고... ㅠoㅠ 인터뷰하게되면... 내 첫사랑은 내가 애원해도 나를 버리고 간 썅년이라고 할거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미안해. 존나... 준면아 이거 못들은거로 해... 내가 진짜 너 사랑하는거 알지... 시발 늦게 만난게 죄지..니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나 먼저 만났으면 나 선택했을 거 다 알아 내가... "



세훈의 엄마는 세훈의 방을 들어오다 보고야 말았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된 채, 인형의 귀를 막으며 못들은걸로 하라는 막내 아들의 몰골을. 엄마는 침대 옆에 멜론과 수박이 든 접시를 놓고 세훈에게 말하셨다.



"쯧쯧... 그 땐 다 그런거다. 좋은 사람 다시 생기겠지. "

"준면이 보다 좋은 사람이 있을까?"

"있어 다. 글고 이거 먹고 수분보충해서 다시 울어. 기운 빠져."

"울지 말라고 해야지."

"내 말을 들을 니가 아니야."

"그건 그래."


세훈이는 엄마가 나가고 멜론이랑 수박을 먹었다. 정말 꿀 맛이었다. 인간사의 비극 중 하나는 자신의 감정이 어떻든 간에 생리적 욕구는 끊임없이 발동하고 또 그것이 충족되면 만족감이 딸려오는 것이었다. 정말 인간의 정신은 인간이 가지기엔 너무 버거운 거야. 이런 몸뚱아리를 하고선 어쩌라는 건지. 세훈이는 잠시 동안 말없이 앉아있다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세훈이는 슬픔의 표현도 참 역동적이었다. 


"아파야 사랑인거죠. 아프니까~ 사랑인거겠죠~ 매일에 눈물에 휩싸여도 가슴 부르터 갈라져도 나는 이사랑 놓지 못해요"



하.... 진짜 나는 이 사랑 놓지 못해요.... 준면아.. 존나 그렇게 멋지게 헤어져놓고 일주일도 안되서 다시 전화하는 건 좀 그렇겠지? 참아야겠다... 폼나는 이별도 참 힘든거구나... 


그 준면이 닮은 사람은 잘 사나...............


그러면서 어느새 그의 집 위치를 떠올려보는 세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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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같은 1편이 왔어요. 근데 이거 재미있어요? 보고있으시면 댓글 한번만 달아주세요.ㅜ 이거 이글루스회원 아니여도 댓글 달 수 있거든요.. 힘 좀 주세요!




덧글

  • 2014/08/21 22:4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하이디 2014/08/21 23:28 #

    보고 계시군요.... 제가 경력이 얼마되지않아 아직 많이 미흡한데 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계속 쓸게요... 아마 해피일거에요. 누군가는 슬프겠지만 하하하. 감사합니다
  • 2014/08/22 01:0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하이디 2014/08/22 12:13 #

    힘 됩니다.. 돌아와야합니다 기억 ㅋ 재밌다니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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